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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라운지/ˇ 원우들의 경영노트

[원우동정_휴맥스] “성공비결은 시대를 읽는 눈과 실천 역량, 그리고 운”


“성공비결은 시대를 읽는 눈과 실천 역량, 그리고 운”
IGM 과 함께하는 강소기업 벤치마킹
매출 1조원 ‘벤처 1세대’ 휴맥스




성공 기업의 경영전략은 무엇인지, 위기는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분석하는 벤치마킹은 경영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경영도구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각 분야에서 독보적 위상을 확보한 강소기업이 많습니다. 중앙SUNDAY는 세계경영연구원(IGM, 이사장 전성철)과 함께 강소기업을 발굴하고, 이들의 경영전략과 위기극복 사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독일 최대의 가전 양판점 ‘미디어 막트’에서 한 손님이 셋톱박스 제품을 고르고 있다. 휴맥스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기며 1위다. [휴맥스 제공] 


디지털 셋톱박스 제조업체인 휴맥스의 지난해 매출은 1조52억원에 달했다. ‘벤처 1세대’ 제조업체 가운데 최초로 1조원 매출을 달성했다. 1989년 창업 첫 해 매출은 1억2500만원. 휴맥스는 21년 만에 무려 8000배 성장했다. 그것도 디지털 셋톱박스라는 단 하나의 품목으로, 별다른 인수합병(M&A)도 없이 일군 성과다. 셋톱박스는 일반 TV에서도 위성방송·케이블방송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변환장치다.

휴맥스는 전 세계 15개국에 법인·지사 등을 두고 80여 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셋톱박스 시장 점유율 세계 4위인 휴맥스는 매출의 95%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외환위기, IT 거품 붕괴 등 풍파를 겪으면서 매디슨·새롬기술 등 ‘벤처 1세대’ 대부분이 좌절을 겪었지만 휴맥스는 꾸준히 성장하면서 벤처 신화를 지켜내고 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노래방 기기에 매달린 공학박사들
휴맥스는 89년 서울대 제어계측학과 석·박사 출신 7명이 의기투합해 설립했다. 대기업의 개발 용역을 주로 맡던 회사는 90년 자체 개발 제품을 처음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이듬해 다시 개발 제품인 ‘See Eye 256’을 선보였다. 카메라로 촬영한 움직이는 화면을 정지화면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제품이었다. 공장 자동화를 위해 현장의 정확한 데이터를 얻으려면 정지화면이 필요하다는 데 착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고객들은 그 제품의 부가 기능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제품설명서 끄트머리에 소개된 8번째 기능에 관심을 가진 것. ‘영상에 자막을 올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노래방이 선풍적인 인기였다. 하지만 자막 처리를 할 수 있는 기술력이 없어 노래 한 곡 부르기가 보통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레이저 디스크로 영상을 재생하고, 노래 가사는 사람이 일일이 쳐 넣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휴맥스의 제품을 응용하면 손쉽게 스크린에 자막을 띄울 수 있었다. 공장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던 공학박사들은 노래방 기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면서 휴맥스는 노래방 업계를 장악했다. 노래방 업계에선 “최신 곡을 쉽고 빠르게 추가할 순 없나요”라고 문의했고, 휴맥스는 CD롬을 내장한 반주기를 만들었다. 급기야 한 거래업체가 “디지털 노래방 기기를 만들면 디지털 셋톱박스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문의했다. 이를 계기로 휴맥스는 디지털 셋톱박스 연구에 들어갔다.

96년 아시아 최초, 세계에서 세번째로 디지털 셋톱박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휴맥스는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셋톱박스는 개발 3개월 만에 1000만 달러 이상 수출됐고, 회사는 97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모두 외면한 1% 시장 공략/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제품결함이 발견되고, 대형 계약이 무산된 것. 그러자 휴맥스는 모두들 “곧 사라질 것”이라며 외면하던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셋톱박스 시장은 폐쇄형 시장(closed market)과 개방형 시장(open market)으로 나뉘어 있었다. 필립스나 모토롤라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방송·통신사와 계약을 맺고 셋톱박스를 공급하면, 방송·통신사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일괄 공급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폐쇄형 시장이다. 입찰·선정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파고들기는 애초에 어려웠다. 반면 개방형 시장은 소규모 방송국이나 개별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시장이었다. 전체 시장의 1%에 그치는 미미한 시장이었지만, 휴맥스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채널이 다양해지고, 품질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커지면서 소규모 케이블방송이 성장할 것이고, 이들과 거래할 셋톱박스 업체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그리고 국내에서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97년 북아일랜드에 첫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영업, 생산·조립, 서비스센터를 현지에 과감하게 진출시켰다. 잇따른 악재로 자금난을 겪는 무명의 기업과, 높은 실업률로 해외 기업의 직접 투자를 적극 유치한 북아일랜드의 니즈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었다. 고육지책의 선택은 전화위복이 됐다. 고객의 요구를 현지에서 바로 듣고 반영해 ‘빠르게 업그레이드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는 글로벌 전략의 시초가 됐다.

이제 휴맥스는 ‘100% 현지화’는 하지 않는다. 대신 상황에 따라 맞춤형으로 해외 진출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법인이다. 2001년 설립된 휴맥스 일본 법인은 영업과 고객서비스센터만 운영한다. 이미 시장을 선점한 업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과 조달보다는 영업과 마케팅에 집중해야 할 시장으로 본 것이다. 또 케이블방송 가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일본 최대 케이블 방송사업자인 ‘제이콤(JCom)’의 셋톱박스 판매 입찰을 따냈다. 폴란드에선 연구개발(R&D)에 집중하고, 인도는 영업과 생산, 미국은 영업과 고객서비스센터에 주력한다. 휴맥스의 예상대로 개방형 시장은 현재 전체 시장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변대규 사장은 경영자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세가지 요소를 꼽았다. 큰 시대의 흐름을 읽는 눈, 그것을 할 수 있는 회사의 역량, 그리고 운이다. 21년 동안 휴맥스가 성장한 비결이 여기에 있다. 그는 “책을 많이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흐름을 읽는 눈이 정교해지는 것 같다”며 “이런 역량은 결국 리더십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성공의 세 번째 요소인 운에 있어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며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악운이 닥쳤을 때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문보기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0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