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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보는 세상/21세기 경영병법

[전문가 칼럼] "그 여자, 성격은 참 좋더라"…개콘 `불편한 진실` 사랑받는 이유

"그 여자, 성격은 참 좋더라"…개그콘서트 `불편한 진실` 사랑받는 이유

완곡어법은 왜?
양적완화·부적절한 관계 등 모호하고 비경제적 어휘지만
민망한 사실을 세련되게 표현…직설화법보다 효과적 전달


 

개그콘서트의 ‘불편한 진실’이란 코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때로는 일부러 눈감고 있던 일상의 소소한 모습을 드러내 공감을 자극하는 웃음 코드가 돋보이는 코너다. 남자친구가 건네준 생일축하 꽃다발 속에 반지라도 들어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면서 여성 시청자들은 마치 자신의 비밀을 들킨 것처럼 놀라며 웃곤 한다.

사실 우리 일상에는 이처럼 들추고 싶지 않은 민망한 구석들이 많다. 어쩌면 그렇게 민망한 일상을 덮는 세련된 방법들의 집합체가 문화일지도 모른다. 문화 수준이 높다고 말하는 사회일수록 껄끄러운 상황을 다루는 다양하고 정교한 방법이 발달해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완곡어법이다.

직설적이고 경제적인 화법을 쓰면 짧은 말로도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 최근 ‘개콘’ ‘나가수’ ‘해품달’처럼 길지도 않은 방송 제목을 줄여서 부르는 경향도 직설화법의 경제논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완곡어법을 쓰면 상대방이 그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완곡어법을 쓰는 이유는 명확하다. 체면을 구기지 않고 민망한 주제를 다루거나, 숨기고 싶은 진실을 피해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경제적 원칙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일상의 대화에서는 모호하고 비경제적인 완곡어법을 기꺼이 사용한다.

완곡어법의 정점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초대받아 집을 방문한 일본인 손님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그 의미가 무엇일까. “요즘 일기예보를 들어 보니, 날이 점점 더워진다고 하네요.” 얼핏 듣기에는 날씨 정보를 교환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창문을 열거나 에어컨을 켜 달라는 부탁일 수 있다. 일본 가정을 방문한 손님이 먼저 물을 한 잔 달라거나 에어컨을 켜 달라고 한다면, 집주인은 손님을 방치한 것이므로 큰 실례를 한 것으로 간주해 몹시 미안해한다. 따라서 집주인의 체면을 고려한 손님은 일기예보를 빌려 부탁을 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아닐지라도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흔히 쓰는 표현이 있다. ‘화장실 다녀온다’는 말로 우리는 직접적인 언급 없이 배설의 필요를 이야기할 수 있다. 영어로는 ‘자연이 부른다’고 하니 정말 곧이곧대로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도 그 유래를 모르는 사람은 도통 그 뜻을 알 길이 없지만, 아는 사람들끼리는 엉큼한 미소와 함께 유용하게 쓴다.

사람을 놓고 이야기할 때도 완곡어법은 도움이 된다. 소개팅을 마친 남자가 주선자에게 “그 여자, 성격은 참 좋더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남자가 여자의 외모에 실망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누군가가 장례식장에서 ‘열정적이고 의분이 넘쳤던 분’이라고 고인을 추억한다면, 우리는 고인이 걸핏하면 화를 내고 남을 비난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자칫 긴장감이 돌 수 있는 상황에서도 완곡어법은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직원을 상대평가하고 이에 기반한 성과급 제도를 도입하자는 경영진의 제안에 노조 대표는 “아직 시기가 아니다”고 말한다. ‘우리는 동의하지 않으니 다시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말라’는 말일 게다. 말하는 사람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완곡어법은 창조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한때 일국의 대통령이 비서와의 불륜이 발각돼 청문회에 불려간 적이 있었다. 그는 불륜이라는 말을 하는 대신 ‘부적절한 관계’라는 전 세계적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명백하게 나쁜 행위지만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 분명하게 전해진다.

경제활동에서도 이런 비경제적 화법은 유용하다. 미국 Fed(중앙은행) 의장은 얼마 전 ‘양적완화’란 정책을 소개했다. 쉽게 말해 빚쟁이 국가가 스스로 더 많은 돈을 찍어내겠다는 말이다. 외환위기 시절 아시아 국가들에 경제 규모에 맞춰 궁핍하게 살라고 했던 IMF(국제통화기금)의 서슬퍼런 기상은 보이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코너가 계속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많다는 말이리라. 때로는 적당히 에둘러 말하는 법이 삶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김용성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