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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보는 세상/ˇ CEO 경영의 샘

Let's master 디자인 경영

동물 특성 맞춘 우리 설계…아사히야마, 日 `최고 동물원` 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종사하는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디자인경영이 가져다주는 효과와 가치를 역설하다 보면 흔히 접하게 되는 반응이 하나 있다. “우리가 활동하는 시장의 특성상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디자인경영은 이미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경영 현장에서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보편적인 방법론으로 대두됐다.

특정 제품이나 프로젝트를 넘어 장기적인 기업 목표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도 유용한 수단임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아직 디자인 경영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기업 관계자들에게 일견 디자인과 관련 없을 것 같은 산업 분야에서조차 디자인이 문제 해결의 주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하고자 한다.

# 디자인으로 재기한 아사히야마 동물원

동물원은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분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디자인을 활용해 폐원 위기의 동물원에서 일본 제1의 동물원으로 거듭났다. 이 동물원은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 아사히카와라는 인구 35만여명의 도시에 있으며, 희귀동물 하나 없는 동물원이다. 이런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인구 1200만여명이 사는 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우에노 동물원보다 관람객이 많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성과라고 할 것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처음부터 성과를 보인 것은 아니다. 1967년 개원 첫해 45만여명의 관람객으로 시작한 이곳은 1983년 60여만명을 정점으로 관람객 수가 급감했다. 노후된 시설 등이 원인이었다. 결국 재정 적자가 누적돼 1995년에는 문을 닫을지가 논의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1997년부터 동물원 운영에 디자인 경영을 도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가장 먼저 디자인을 도입한 대상은 동물 우리였다. 다른 동물원들은 단순히 동물을 보여준다는 목적 아래 전시관과 우리를 설치했다. 이 때문에 동물원의 우리 내지 전시관은 동물 고유의 특성이 고려된 형태가 아니라 획일적으로 구성됐다. 이로 인해 많은 동물들은 고유의 활동성을 잃어버리고 박제처럼 움직이기 싫어했다. 관람객들은 무기력하게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동물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 주목한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각 전시관과 우리를 동물 고유의 특성이나 본성,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으로 디자인했다.

오랑우탄의 공중 방사장은 이런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의도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표적 전시관이다. 2001년 만들어진 오랑우탄 공중 방사장은 밀림에서는 오랑우탄이 대부분의 시간을 나무 위에서 보내는 습성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설계했다. 오랑우탄의 야성을 담아내기 위해 전시관 양쪽에 철기둥을 세우고 로프를 연결해 오랑우탄이 공중에서 생활하기에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줬다. 밀림에서 나무 사이를 이동할 때 나뭇가지를 붙잡고 이동하는 오랑우탄의 습성을 고려한 것이다. 오랑우탄의 활동성이 높아지면서 관람객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 동물 특성을 반영한 디자인으로 활기

동물원들은 보통 바닥에 있는 먹이통에 먹이를 주지만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먹이를 줄 때도 해당 동물들의 습성을 반영했다. 야생에서 암벽이나 낭떠러지를 오가며 생활하는 염소에게 먹이를 줄 때, 좁은 말뚝을 세우고 그 끝에 먹이통을 설치해 두고 염소가 좁은 말뚝 위를 걸어가서야 먹이를 먹을 수 있게 했다. 염소가 좁은 말뚝 위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수도 있지만, 야생에서는 이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간다. 이런 구조는 염소의 본능을 충족시키는 최적의 환경이며 야생에서의 습성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가장 좋은 전시환경이다.

동물원에서는 사람들이 보다 가까이에서 동물들을 관람하기 위해 전시관에 최대한 다가가려는 모습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사람들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디자인된 전시관과 우리를 설계, 관람객의 만족도를 극대화했다.

나무 위와 같은 높은 곳을 좋아하는 표범의 우리는 공중에 설치, 나무 위에서 쉬고 있는 표범을 바로 밑에서 관람할 수 있게 구성했다. 수심 6m의 대형 수조를 아크릴 원통으로 설치해 그 속에서 헤엄치는 바다표범을 360도로 관찰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2006년 설치한 ‘침팬지의 숲’은 바로 옆에서 동물들을 관람하고자 하는 관람객의 욕구와 동물 고유의 행태학적 특성을 모두 반영해 디자인된 최고의 구조물로 꼽힌다. 침팬지는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이런 특성을 고려해 침팬지가 관람객을 구경할 수 있는 구조물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를 위해 아크릴로 된 투명한 공중 터널을 만들어 호기심이 많은 침팬지들이 지나가는 관람객들을 구경할 수 있게 유도했다. 관람객 역시 자신들을 바로 코 앞에서 구경하는 침팬지들의 모습을 생생히 관람할 수 있게 됐다. 유리 터널에 꿀을 놓아 침팬지가 손바닥과 혓바닥 등으로 꿀을 핥아먹게 해 다양한 행태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 게시물도 사육사가 직접 써 호기심 유발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디자인을 도입한 것은 전시관에 국한되지 않는다. 디자인을 통해서 관람객들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시물을 모두 읽고 가게끔 만들었다. 기존 동물원 게시물은 해당 동물의 개괄적인 설명과 현재 동물원의 위치 등에 대한 설명이 전부였다. 아사히야마 동물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것을 사육사들에게 해당 동물에 대한 게시물을 직접 자필로 작성, 게시하도록 바꿨다.

사육사가 자필로 친숙한 문장을 사용해서 동물과 있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들을 자유롭게 기술한 게시물은 관람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육사들은 그때그때 해당 동물에 대한 다양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들로 게시물 내용을 변경했다. 다음에 다시 동물원을 방문하게 되면 새로운 내용을 접하거나, 동물의 최신 소식을 볼 수 있는 재미를 제공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 관계자에 따르면 사육사의 자필 게시물을 제시하기 시작하면서 멈춰 서서 게시판을 읽는 사람이 7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타이포그라피(typography)는 글꼴, 서체 등을 디자인해 해당 문자에 느낌을 불어넣고, 이로 인해 이를 접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인식을 변화시키는 디자인 분야다. 인공적으로 각인된 조형물을 통한 게시물이 아니라 사육사의 손글씨로 게시된 게시물은 이를 대하는 관객들의 태도를 변화시킨 것이다.

디자인경영을 도입한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성과는 기적에 가깝다. 일본 최북단에 놓여 있고, 희귀동물 하나 없는 소규모 동물원에 지나지 않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디자인경영을 도입한 1997년 이후 단 한번도 관람객 수가 줄어들지 않았다.

 2004년에는 인구 1200만명이 살고 있는 도쿄 한가운데 있고, 500여종의 각종 희귀동물을 보유하고 있는 우에노 동물원보다 관람객을 많이 유치한 일본 최대의 동물원으로 등극했다. 아사히야마는 국제적인 동물원으로 거듭 성장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2006년부터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있는 아사히카와와 서울 간 정기편이 취항할 정도다.

 

“디자인 수준은 최고경영자 수준 대변”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경우는 디자인과 전혀 무관해 보이지만 디자인을 도입해 얻게 된 성과다. 정경원 KAIST 산업디자인학부 교수는 “디자인 수준은 그 회사 최고경영자의 수준과 같다. 경영자가 스마트하면 디자인도 스마트하고, 경영자가 현명하지 못하면 디자인도 현명하지 못한 게 한눈에 보인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기회에 내가 활동하고 있는 분야는 디자인과 무관한 분야라고 치부하며, 디자인 경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일련의 성과들을 등한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봤으면 한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

원문보기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71974921